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주시는 여러분들께 편지로 인사드립니다.
기도편지를 쓴다고 앉아서 생각해보니 여러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한국은 벌써 많이 덥다고 하는데 여기 르완다는 오히려 한국보다 시원한것 같네요.
한낮 땡볕에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니까요,,,
저희는 병원 근무를 시작한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나의 의료지식과 경험을 사용하여 이곳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헌신하리라 결심하고 열의에 불탔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저희가 잘해낼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검사와 영상장비들과 우수한 약제들을 사용할 수 있어 진료여건이 좋았지만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혈액검사도 되지 않고 CT, MRI는 아예 생각도 못하며 초음파검사도 전문의가 없어 정확한 검사를 못하니 무슨 병인지 원인을 찾기가 어려워 답답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아직 르완다어가 익숙하지 않아 환자가 어떻게 아픈지 대화도 어려우니 진단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또 저희가 근무하는 키보고라 병원이 distric hospital(인근지역의 병원들이 해결 못하는 어려운 케이스나 심한 환자들이 전원 오는 병원의 개념입니다.)이어서 환자들이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케이스들 입니다. 겨우 진단을 내려도 약이 없으니 치료도 어렵구요, 한국에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 와서는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환자머리에 손 얹고 하나님께 치유해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이곳 신생아실에는 최근 3년 동안 미국인 의료선교사( 신생아 전문 간호사)가 와있어서 그분이 많이 체계를 잡아놓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국에서 익숙해져있는 방식과는 많이 달라서 처음 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소아과 전문의인데... 간호사에게 지적당하고 뭔가를 배우고 물어야만 한다는 게 처음에는 스스로 한심하고 부끄러웠는데, 이것도 훈련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힘들고 어처구니없이 바보 같은 상황들을 겪으면서 제 자신에게 큰 실망을 하고 진저리치며 스스로를 곰곰히 보게 되며 깨달은 게 있습니다. 얼핏 봐서는 의사라는 달란트도 있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도 있고, 헌신의 결단도 있어보였고, 경건의 모습도 있는 것 같아 그럴듯해 보였지만 실상을 보니 저라는 인간 자체에는 별로 기대할게 없다는 겁니다. 제 자신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니, 이제는 눈을 하나님께 돌려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밖에 없네요. 내가 무언가 잘 할 수 있다는 기대는 이제 없어지고 그냥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손에 들린 질그릇같이 사용되기를 잠잠히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라는 겁니다. 이곳이 역사가 오래된 선교병원인지라 단기로, 장기로 여러 명의 다양한 선교사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저녁마다 키보고라 병원의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기도모임을 갖는데 저번 주에는 모인 선교사들이 영국, 미국, 한국, 멕시코, 케냐 무려 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더군요. 이렇게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르완다의 이 시골구석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능력에 탄복하며 놀랐습니다. 제가 영어가 어려워서 의사소통이 힘든걸 알고는 단기선교사로 온 영국아가씨가 저녁마다 제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같이 일하고 있는 미국인 간호사는 제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표시안내고 가르쳐 주려고 많이 애씁니다. 그분은 낙심하고 있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네가 배워야 되지만, 1년이 지나면 네가 새로 오는 사람을 도와주고 가르쳐줘야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사람이 또 다음 사람을 가르쳐 주고 도와준다. 이게 바로 진정한 선교팀이고 우리는 한 팀이다.”
참 인상 깊은 말이었습니다.
선교는 나 혼자 헌신하고 열심히 일해서 열매를 맺는게 아니라, 너와 나 우리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같이 일해야 하고 서로 도와줘야 하는 것이고
내가 거둔 성과물이란 건 없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같이 이루는 일이란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우리 선교사들 뿐 아니라 도움을 받는 현지인 의사들도 같이 일해야 하는 같은 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우리 모두가 그의 안에서 묶여있는 하나란 것 깨달았습니다.
‘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제가 최근 이곳에서 마음에 많이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보냄을 받은 저희 가족과 보내주신 여러분 또한 한 선교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일하시는 한 팀의 일원이 된 것이 감사합니다.
참 아이들 소식도 전해드려야겠네요.
소현이는 방학기간이라서 정신없이 놀고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시간이 너무 많아서 지겨워합니다. 원래 부지런하던 아이라 그런지 나름 혼자서도 공부를 하네요. 신기하기만 합니다. 요즘은 키 키우는데 관심이 생겨서 매일 열심히 줄넘기를 하고 또 종이공예 취미가 생겨서 열심히 색종이 오리고 자르며 보냅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아주 행복한 중딩입니다. 그래도 소현이는 가끔 자신의 장래에 대해 현실적인 불안이 가끔 있는듯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장래를 맡기고 신뢰하는 법을 배우면 좋은데, 아마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리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재석이는 요즘 키도 부쩍 많이 컸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춘기가 시작되려 하는지 가끔 짜증도 내고, 누나에게 덤비는 일도 있네요. 재석이는 지겨운 것을 특히 싫어하는데 르완다에서는 특별히 할 만한 게 없어서 아침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가 고민입니다. 재석이는 아직까지 재미있는 게 많은 한국에 가자고 조를 때가 많습니다.
아시는 분의 소개로 아이들이 성경통독을 시작했는데, 소현이는 정말 열심히 잘하고 재석이는 며칠 분을 몰아서 한꺼번에 읽어 내립니다.
기도해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지를 드릴 때 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4. 8. 5. 르완다에서
박준범, 백지연, 박소현, 박재석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