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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한 주일 밤이 깊어갑니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미국을 다녀온 후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해 다시 일어나 앉았습니다. 제 처는 몸살로 약을 먹고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4월은 르완다에 살면 누구나 슬픔과 비에 푹 젖는 계절입니다. 인구 백만을 잃은 종족간의 학살이  22년 전 4월에 있었고 우기에 접어든 르완다의 하늘은 굵은 비를 매일 내립니다.

저희 부부는 지난 2주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성광교회에서 초청해 주셔서 많은 격려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교인 700명의 교회에서 세계 곳곳에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재정의 60%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하고 75% 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회가 또 어디에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말 성광교회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 참 깊은 생각에 젖었드랬습니다. 교회의 재정의 이월금을 예산의 10% 이내로 묶고 나머지 모든 헌금을 선교지로 보내려고 하는데 각 선교사는 필요에 따라 신청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단 몇 줄의 행정적인 어투의 글이었지만 저도 한 단체의 살림살이를 책임져 본 사람으로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참석해 보니 그렇게 해서 차를 살 수 있게 되신 선교사님들이 5-6명 계셨구요.  제가 과연 이 교회의 파송선교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메일을 읽은 후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교회에 와서 성도님들을 만나봐도 누구 하나 큰 부자가 없이 미국의 이민생활의 각박함 속에 빠듯하게 살아가시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저희 손에 선물 하나라도 더 쥐어주려고 공항까지 오시는 모습을 보면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렇게 힘에 넘치게 헌금하시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선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편지는 조금의 의무감도 없이 정말 기도로서 작성하네요. 제가 22년 전 하나님을 몰라 헤메고 살던 저를 먼저 사랑하시어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에 다시 감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무의미한 삶과 씨름하고 있었을 혹은 이미 세상을 버렸을 제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죠. 그리고 지금도 순간 순간 세상의 어려움과 유혹에 무릎을 꿇고 싶은 순간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고 위태할지언정 아주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서 버티고 있습니다.

작년 고속으로 달리던 제 자동차의 앞바퀴가 갑자기 빠져나가는 사고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부상없이 살아 숨쉬고 있어서 감사하구요. 혼자 재수하던 큰 딸 훈희가 애처로와 했는데 당당히 전면 장학금을 받고 싱가폴에서 대학생으로 잘 지내고 있어서 감사하구요.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일은 이제 설계를 다 마치고 시공업체 선정과의 계약을 앞두고 있고 이제 건축허가를 받으려 합니다. 재정이 부족해 어둠 속에서 한 발씩 내딛는 것 같지만 믿음을 갖고 내디딜 수 있고 같은 비젼을 갖고 함께 걷는 선교사들이 있어서 감사하구요.

미래가 훤히 내다보여서가 아니라 이제껏 함께 해 오신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시는 것이 그냥 믿어져서 평안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죠.  사실 그 약속 외에는 아무 것도 저에게 보장된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믿는 의지하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 그것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저를 격려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을 때에도,  그리고 믿음을 얻어 살아 있는 이 순간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남은 인생길에도 함께 하셔서 바울이 말씀하신 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저의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습니다.

둘째 딸 진희가 지원한 여러 학교 중에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Cornell 대학에 우수한 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입학허가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미국에 와서 보니 성광교회 교인들이 그런 학교를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자란 애가 합격할 수 있었냐고 기뻐한다기 보다 놀라시더군요.  ‘Likely Letter’ 라고 합격한 학생들 중에 일부에게만 미리 합격을 알려주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진희와 저희 온 가족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후에 Admission Letter 정식으로 나중에 도착했구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무슨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이 곳 선교사 자녀학교가 불비하여 고등학교부터는 자습하다시피 공부한 아이가 그렇게 합격하는 것만으로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미국으로 가기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이고 미국에 도착한  몇 일 후 코넬 대학은 진희에게 장학금은 없다는 통보가 financial aid office에서 왔습니다. 학교 지원할 때 이미 집안 재정 상황을 소상히 적어 보냈고 장학금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밝힌 상황이기 때문에 합격을 통보하는 것은 재정지원을 고려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던 저희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구요.

이미 부모들이 미국을 가 버린 상황이라 진희는 혼자 엄청 울었나 봅니다. 함께 지내는 이희주 선교사가 달래느라 아주 애를 먹었던 모양입니다. 돌아와보니 진희는 많이 안정이 되었고 재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네요.

작년 훈희가 장학금 신청해야 하냐고 물어봐서 그 외에는 길이 없다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독한 말 하고서는 그 말을 알아듣는 딸보다 돌아서는 제가 눈물이 더 났었죠. 덕분에 이번에도 조금은 쉽게 넘어가나 봅니다. 그 때보다는 조금은 더 하나님은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이시요 진희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각각 최선의 길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가끔은 부모도 자식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나 봅니다. 코넬에 합격한 후 그제서야 저에게 진희가 지원한 학교들에 제출했던 에세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읽으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어떻게 빚어가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진희 에세이의 제목은  ‘my brother’s keeper’ 입니다.

혹시 제목 보시고 생각나시는 것 없으십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계셨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친히 묻습니다. 그 분의 물음은 취조하고 양심의 고문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응당 지켰어야 할 우리 형제들에 대해 눈 감아 버린 우리 영혼의 현위치를 물으시는 거겠죠.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I don’t know. Am I my brother’s keeper?

진희는 막내 동생 강희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강희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훈희 언니처럼 용감하게 대신 맞서 싸워주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타고난 장애로 힘들어 하는 강희의 아픔과 또한 그것을 지켜보는 자신의 아픔이 진희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하게 해 주었는지 에세이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When our family moved to Rwanda from South Korea in 2010, the school we attended had no support for special needs students. Nor did they make the effort to accommodate my brother’s needs. We were all tense and exhausted from the adjustment, but the transition took the highest toll on him. The nine-year-old wept in my mother’s arms, frustrated by his own limitations. It was heartbreaking to watch him cry over math problems, when he never cried for being bullied by his peers.  I cried out of rage. The world was an unwelcoming place for those who were different.

 

One day, I realized that I, too, was responsible for the state of the world. For years, I considered myself guilty for failing to protect my brother. I hadn’t realized that I was – am – different as well. I wasn’t a fighter like my sister. But just because I wasn’t like her didn’t mean that I didn’t love my brother. If directly confronting people was not something I could do, then I would work to change them………..

 

My mission in life is to put a stop to this fear against those who are different. I will work with children and adults alike, so that they can embrace differences…………

 

I am embracing my own difference.

 

저희 아이들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모도 모르게 아이들끼리 헤쳐나가야 할 무거운 짐들이 있었다는 것이 깨달아지니 저도 모르게 이빨이 꽉 깨물어집니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강희와 그 아이를 안고 가는 것이 저희 부모만의 평생의 짐인 줄 알았는데 훈희 진희에게도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딸들이 그런 사실에 무릎 꿇고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큰 딸 훈희는 강희를 통해 이 세상에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인권변호사가 되는 것이 자기 공부의 목표입니다. 진희는 또 그래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지원한 거구요.

저는 27살까지 하나님을 몰랐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저희 애들은 아빠보다 빨라도 한참 빠릅니다. 하나님 그거면 충분합니다. 제 인생에 누렸던 어떤 것도 하나님을 내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흑암 속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그 분의 인도하는대로 나머지 삶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던 제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마 아프리카로 건너 온 후 22년 동안 이렇게 짙고 낮게 마음 속이 젖어오는 슬픔과 함께 그보다 더 큰 잔잔한 은혜의 기쁨을 맛본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게 솔직한 것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의 자식들에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밀어 넣었고 그러면서도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에 가슴이 쓰려오고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그로 인해 더욱 저희 아이들을 끌어안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는 그런 두 가지 상반된 마음 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포함해서 이 글을 읽으실 모든 분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어려움들이 하나 둘 쯤은 있다는 것을 모르시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더욱 여러분이 인내를 배우고 더욱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투해 주실 여러분을 통해 이 세상의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 것 아닐까요?

 팔불출인 줄 압니다만 저는 환경에 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제 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한 편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 속에 깊은 슬픔 속에 젖어 있는 르완다의 영혼들에게 저희 가족이라도 희망의 촛불이 되어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섬기시는 교회와 일터에서 우리가 가진 소망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분의 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 증인으로서 부족하지 않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아 참…좋네요. 세상은 한 번 살아볼 만 한 것입니다.

2016년 4월 18일 01:07

이상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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