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성경강좌’로 유명한 노우호 목사가 한국교회의 방언은 100% 거짓방언이며 악령운동이고 방언을 부추기는 목회자는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며 “방언을 검증하자.”는 도전장을 당차게 내밀었다.
노우호 목사가 최근 출판한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에서 “분명한 것은 현대 교회의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방언과 다르다는 것이다. 분별력이 없는 목회자들이 현대교회에 침투한 방언을 맹목적으로 성령의 은사로만 알고 본인들이 사모하고 있고 성도들에게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선동을 하고 있다. 수많은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성경에서는 방언(方言)으로 기도하라는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고 주장한 것.
노 목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교회의 신비주의는 오순절 운동이 아니라 고린도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방언은 성령의 은사(恩賜)가 아니라 악령의 기만(欺瞞)이었다. 방언운동은 성령의 운동이 아니라 악령운동이며 방언기도는 자기의 영의 기도가 아니라 악령이 성령을 가장하여 사람들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람의 기도를 훼방하여 온 것이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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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하우스 원장 노우호 목사 프로필 ( 자료 : 홈페이지 ) |
방언에 대한 이러한 입장을 당차게 밝힌 노우호 목사는 마산사론교회 담임이며 ‘에스라하우스’ 원장이다. 에스라하우스는 1977년 8월부터 시작된 성경연구원으로 ‘성경을 최고(最高) 권위(權威)로 믿고 가르치는 곳, 성경(聖經)과 역사(歷史)와 미래(未來)를 연구하는 곳’ 등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에스라 성경강좌(EZRA BIBLE LECTURE)’를 진행하는 곳이다. 노 목사는 지난 10월 24일 <방언을 검증하자>(에스라하우스 출판부, 신국판 440쪽)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작금에 한국 교회에 번지고 있는 방언을 두고 지난 37년 동안 검증해 본 결과 100% 거짓방언이었다.”고 단정을 짓고 “단순히 거짓 방언이라면 문제가 간단하다. 깨닫는 날로부터 그만두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방언이 거짓 방언정도가 아니라 악령의 방언, 귀신의 방언일 때는 문제가 된다. 방언을 그만 두어도 귀신은 그 사람 안에서 나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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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우호 목사는 최근 저서 <방언을 검증하자>의 표지 |
노 목사는 이미 ‘에스라성경강좌’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방언과 관련한 자신의 이와 같은 견해들을 숱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방언과 관련된 성경적 논점과 질문 그리고 답변들을 무수히 게재해 놓고 있다.
방언과 관련된 노 목사의 이런 견해에 대해 예장합동 소속 P목사가 <교회와신앙>에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었다. 방언에 대한 노 목사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메일을 확인 한 필자는 방언과 관련한 노 목사의 견해와 주장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먼저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 작업을 했다. 그리고 노 목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한국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에 대해 100% 거짓방언이라고 주장하셨는데 맞느냐? 이 내용을 보도해도 되겠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노우호 목사는 “해도 된다.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방언 관련 글과 전화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은 노 목사의 입장과 견해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 노우호 목사의 방언에 대한 입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방언을 검증하자>라는 책이 나왔다.
이러한 노 목사의 방언에 대한 주장은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방언에 대해 통용되어온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일반적인 정서와 온도차가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우호 목사의 일방 주장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 찬반 논쟁을 통해 쌍방의 견해와 입장 그리고 반박 재반박 등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에 먼저 노우호 목사가 주장한 내용의 개괄을 이번 기사에서 밝힌 후, 이런 노 목사의 견해에 반박하거나 변증하는 의견 그리고 재반박 등을 수렴하여 <교회와신앙> 지면에 게재하려고 한다.
노우호 목사는 자신의 저서 <방언을 검증하자>라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나타났던 방언은 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였다. 그날의 방언은 개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은사가 아니라 성령이 강림하시는 표적이었다. 그날의 방언은 그 날 하루에만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러한 현상이 날마다 계속된 것이 아니다.
가이사랴에 있었던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방언도 예루살렘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그날의 방언도 오순절 방언과 같이 사람들 중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높이더라.’ 하는 기록을 보면 방언하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이사랴의 방언 역시 성령이 임재하시는 표적이었을 뿐 결코 개인에게 분여하여 일생동안 활용하는 은사가 아니었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몇 사람에게 안수할 때에 나타났던 방언도 그날 하루만 나타난 현상이었고 역시 성령님이 임하시는 표적이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안수할 때 방언을 하고 예언을 했던 사람들도 대체로 유대인들이었다. 세례 요한이 강조했던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보아서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날 12시람 쯤 되는 사람들이 예언도 하고 방언도 했다. 그날에 나타난 방언 역시 개인에게 주시는 은사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는 표적이었다.
방언을 은사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던 유일한 사람은 바울 사도였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서 방언을 은사들 중에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은 거짓 사도 궤휼의 역군들이 꾸며낸 기만술로 드러나게 되어 곧 그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방언이 없었다(고후 11:4~28). 따라서 방언을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이 그치게 된 것은 AD 55년경이었다. 그리고 그 후 100년 정도 지나서 몬타누스 신비주의자들이 방언과 같은 소리를 내었다고 하지만 곧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의 방언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표적이었다는 사실은 확증되었고 표적으로서의 방언과 거짓 방언은 그치게 되었다.
1901년 미국의 캔사스 주 토페카의 베델신유학교 여학생 아그네스 오즈만의 입에서 나오게 된 이상한 소리도 성령의 은사였다는 증거는 없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소견에 불과하다. 그 학교를 운영하던 찰스 폭스 파르함은 그때의 방언을 오순절의 회복이라고 오해했다. 찰스 폭스 파르함은 앞으로는 선교사가 선교지에 갈 때 언어훈련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었다. 그 말을 믿고 인도 지방으로 선교를 하기 위하여 갔던 가르라는 사람은 인도에 가서 입을 열어 무슨 소리를 내었지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작금에 한국교회에 번지고 있는 방언을 두고 지난 37년 동안 검증해 본 결과 100% 거짓 방언이었다. 단순히 거짓 방언이라면 문제가 간단하다. 깨닫는 날로부터 그만두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방언이 거짓 방언정도가 아니라 악령의 방언, 귀신의 방언일 때는 문제가 된다. 방언을 그만두어도 귀신은 그 사람 안에서 나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그러면서 노 목사는 ‘방언의 위험’에 대해 20가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악령의 방언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둘째, 귀신의 방언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셋째, 엉터리 방언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서 위험하다. 넷째, 방언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악령이 들어오는 수도 있다. 다섯째, 거짓 방언은 본인의 기도를 훼방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여섯째, 요란스럽게 하는 방언은 타인의 기도를 훼방하게 된다. 일곱째, 거짓 방언이라면 일생 동안 헛소리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여덟째, 악령을 받은 자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아홉째, 방언 받은 것을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열 번째,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성령 충만으로 오해하고 있다. 열한 번째, 방언을 받았다고 스스로 신령한 자로 착각할 수 있다. 열두 번째, 방언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열세 번째, 무의식과 무아지경에 빠져서 얼마든지 속을 수가 있다. 열네 번째,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자는 성경공부를 하지 않는다. 열다섯 번째, 방언기도만 하고 의지와 이성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열여섯 번째, 헛소리 방언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범할 수가 있다. 열일곱 번째, 광신적인 신비주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다. 열여덟 번째, 통역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알 수가 없어 위험하다. 열아홉 번째, 분별도 할 수 없고 검증도 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스물 번째, 두 사람도 같은 방언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위험하다.”
이어서 노 목사는 “현대 교회의 방언은 위험하다.”면서 50가지의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01.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다. 02. 아무도 통역할 수 없는 소리도 방언이 아니다. 03.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는 허공에다 하는 헛소리다. 04. 언어의 체계가 없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다. 05. 문법이 없고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것은 방언이 아니다. 06.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는 방언이 아니다. 07. 방언은 천사의 언어도 아니고 영적인 언어도 아니다. 08. 방언은 성령의 언어도 아니고 영적인 언어도 아니다. 09. 방언은 말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10. 참 방언을 받았다면 통역하기를 기도해 보아야 한다. 11. 사람이 영으로 기도하려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12. 사람이 영으로 찬미하려면 마음으로 찬미해야 한다. 13.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아멘하지 않을 것이다. 14.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다섯 마디 말로 하는 것이 유익하다. 15. 함께 모여 방언으로 말하면 누가 보아도 미쳤다 할 것이다. 16. 하나님께서 참 방언을 주셨다면 반드시 통역도 주셨을 것읻. 17. 통역이 잘되지 않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라 헛소리에 불과하다. 18. 통역이 없는데서 계속하는 방언은 귀신의 방언일 수 있다. 19. 몇 시간씩 방언하는 경우 귀신들의 장난일 수 있다. 20. 참 방언이라도 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 21. 참 방언이나 예언도 두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해야 한다. 22. 통역이 없는 경우나 통역이 안되는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23. 주는 자와 받는 자 외에 알 수 없는 방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4. 방언으로 메시지가 내려왔다는 말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25.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말하려면 한국말로 해야 한다. 26.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이상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속임수다. 27. 방언이란 말은 다른 지방, 다른 민족의 언어라는 뜻이다. 28. 거짓 방언도 있고 귀신의 방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9. 억지로 배우는 학습방언들은 100% 가짜라고 할 수 있다. 30. 혼자 기도하는 중에 임했다는 방언도 가짜들로 드러났다. 31. 알 수도 없는 영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32. 모르는 영에게 몇 시간씩 의지를 내어 주는 것은 위험하다. 33. 자신의 영혼을 수동태에 방치하는 자세도 매우 위험하다. 34. 문법 체계가 없는 불쾌한 소리를 반복하는 것은 방언이 아니다. 35. 분초 단위로 행동을 지시하는 방언도 귀신의 방언이다. 36. 몇 시간씩 기도하게 하는 방언은 귀신들이 하는 짓이다. 37. 방언으로 설교나 예언하는 것은 100% 가짜였다. 38. 타인의 비밀을 폭로하는 방언은 사탄의 훼방이다. 39. 무례하거나 자랑하거나 교만한 방언은 가짜들이다. 40. 의미도 없고 문법도 없는 이상한 소리는 가짜 방언이다. 41.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방언도 사탄의 모조 방언이다. 42. 주변사람의 기도를 훼방하는 방언은 귀신들의 방언이다. 43. 아무 것도 모르는 초신자의 방언은 귀신들의 방언이다. 44.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의 방언도 위험한 일이다. 45. 오늘날 방언은 1,000명이 하면 1,000가지다. 46. 10,000명이 하게 되면 10,000가지가 다르다. 47. 따라서 아무도 검증을 할 수가 없고 알 수도 없다. 48. 알아들을 수도 없고 통역도 검증도 못한다면 위험한 것이다. 49. 귀신들이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속일 수 있어서 위험하다. 50. 특별히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위험하다.”
노 목사는 “아직까지도 현대 교회의 방언이 성령의 은사인 줄로 철석같이 믿고 매일같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방언도 성령의 은사라는 증거는 없다. 지금 교회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도 영적으로 큰 위험에 놓여 있다.”면서 “이렇게 위험한 방언을 부추기는 목회자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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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있는 노우호 목사의 방언에 대한 주장 |
그러면서 노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방언에 대해 ‘거짓방언’이라며 자신의 소신을 과감하게 밝힌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에서 “지금 우리 기독교는 2000년 역사 이래 가장 큰 시험에 휘말리고 있다고 본다.”면서, “사탄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제는 타락과 변질을 부추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사탄이 거짓방언을 가지고 교회를 공략하기 위하여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고 본다. 지난 100년 동안 사탄의 작전은 거짓 영들을 침투시켜서 교회를 변질시키는 짓을 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분별력 없는 목회자들은 악령을 성령으로 알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방언을 받으라고 성도들을 선동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렇게 악한 일에 앞장을 서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러한 판국에 방언을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독자들이 헤아려 주시기 바랄 뿐”이라면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노 목사는 책의 말미에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거짓 방언이 없는 교회에서 바른 신앙을 갖게 되는 그날까지” 이 일을 계속 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 목사는 목회자들에 다음과 같은 20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1.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하실 때 무슨 말인지 알고 계십니까. 2. 방언을 성령님이 주셨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3. 자신이 하는 방언이나 성도들의 방언을 통역할 수 있습니까. 4. 자신이 하는 방언들 중에 한 단어라도 아는 것이 있습니까. 5. 교회 안에서 몇 가지의 방언이 사용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6. 자신의 방언과 성도들의 방언이 귀신의 방언이면 어찌됩니까. 7. 방언으로 기도한 것이 모두 헛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8. 방언을 받을 때에 악령이 들어 온 것이라면 어떻게 됩니까. 9. 성도들 안에 악령이 들어와서 방언을 하고 있으면 어찌됩니까. 10. 목사님의 교회 안에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은 자가 있습니까. 11.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 방언을 하지 말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12. 온 교회가 함께 방언으로 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 13.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했다고 봅니까. 14.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왜 금방 그치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15. 고린도 교회 방언이 그친 후 1900년 동안 왜 방언이 중단되었습니까. 16.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던 방언이 성령의 은사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17. 방언을 미끼로 악령들이 사람 안에 들어왔다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18. 목회자가 이런 것도 분별하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19. 많은 목회자가 방언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 큰 교회 목사가 방언을 하니까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노 목사는 이상의 20가지 질문에 대해 “방언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목회자들이 받은 방언이 악령의 방언이면 목회자들 안에 귀신이 있다는 뜻이다. 목회자들 안에 귀신이 내주하고 있다면 목회자들 안에 성령님이 거하지 않는다. 성령님이 거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목사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밝히고, 따라서 “목회자의 목회자 방언 목회를 하고 있다면 성령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순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령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노우호 목사는 “어렵게 전도하여 가르쳐 온 성도들에게 결국 악령의 방언을 받게 했다면 목회는 실패한 것”이라면서 “모르고 했다지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방언을 성령님이 주셨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라며 재차 질문을 던진 후 “대답을 할 수 없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만약 성도들에게 방언을 받게 했다면 이는 더 큰 일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노 목사는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 결론의 말미에서 “지난 100년 동안 이렇게 위험한 방언에 대하여 아무도 검증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방언에 대하여 막연하게나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우려하던 학자들도 이제는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그저 몇 사람이 방언과 신비주의를 염려하고 있는 정도”라면서 “분별력이 없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방언의 실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불나비처럼 신비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노 목사는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방언은 은사가 아니라 표적이었고 은사인 줄 알았던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거짓사도와 궤휼의 역군들이 저지른 기만이었다.”면서 “1977년부터 지난 37년 동안 직접 자신이 검증을 통해 드러나게 된 사실은 현대 교회의 방언 100% 귀신들의 속임수로 드러나게 되었다.”고 결론지은 후 “오랫동안 방언기도가 성령의 은사라고만 믿고 매일같이 방언으로 기도해 온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쉽게 수용이 되지 않을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검증해 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우호 목사의 이러한 주장에 ‘방언목회’라고 지적당한 측이 뭐라고 응답할 것인지 궁금하다. <교회와신앙>은 노 목사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반박과 재반박에 지면을 최대한 할애하여 쌍방 간 또는 다자간의 활발한 논쟁을 통해 한국교회 목회자나 성도들이 방언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정립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단, 논점과 상관이 없는 인신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은 삭제 처리할 방침이다.
글은 필자의 메일(cnf2778@amennews.com)로 접수하며 한국교회 목회자나 신학교수, 혹은 평신도 가운데 방언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정론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교회와신앙>는 이번 이 기사 뿐 만 아니라 다른 기사에 대해서도 정당한 반론은 언제든지 수용함을 아울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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