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교장의 편지
지난 2003년 11월 22일 육군사관 학교장 김충배(金忠培) 중장이 사관생도 1,000여명이 모인 강당에서 한 연설문입니다. 이 내용이 '육사 교장의 편지'란 제목으로 인터넷 신문에 게재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읽는 네티즌들의 숫자가 지금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녀들 교육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5.16 혁명직후 미국은 혁명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우리에게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에 어디서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당시 서독이 필요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등학교 출신 독일파견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4만 6천명이 모였다.
그들 중에는 정규 4년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 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한없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의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붙여진 별명이 '코리안 엘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구테타 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 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의 일행을 거리의 시민들이 프랑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 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 일을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도 함께 울면서 자식 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동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 나오자 미처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 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돈 좀 빌려 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 주세요. 여러분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 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없고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다.
UN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 여 개국, 당시 필립핀은 국민소득 170달러, 태국은 220달러 등 이 때, 한국은 76달러 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 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서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부터 당신들이 말하는 이른바 보수 수구 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에 간 아들 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다.
또한 사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 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며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다시 바라 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 세력으로 폄훼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던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와 목숨을 담보로 이국 전선에서 피를 흘린 우리 국군 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전과 평화 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세대를 수구 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 때 땀흘리며 일한 5.60대들 보수 수구 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현명한 눈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는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견뎌, 국민소득 4만 달러의 고지를 달성할 때까지 우리들 신.구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서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 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 주면서 함께 가 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