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범-백지연선교사 기도편지

by 구교영집사 posted Mar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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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늘 감사하는 동역자 여러분을 떠올리며 2016년 첫 기도편지로 인사드립니다.

2달전에 보내드렸던 기도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내용중에 “환경평가를 위해 관공서에 등록을 마쳤는데 짧으면 한달 길게는 석달이면 끝나니, 빠르면 2월에 건축을 시작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쓴걸 읽고 잠시 웃었습니다. 역시 아프리카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그  환경평가가 2월에서야 겨우 끝났습니다.
환경평가에서 승낙이 떨어지기 전에는 다른 것을 진행할 수 없어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시공사를 설정한 후 건축허가신청하고 기다리게 되면 실제 건축은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건축진행은 더디지만, 저희들의 맘속에서는 뭔가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듯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편과 제가 올해부터는 병원준비를 위해서  키보고라병원을 그만두고, 인근 키바가바가병원에서 근무한다고 일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키바가바가병원에 근무하면서 환자의 죽음이 유달리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열악한 환경이고 키보고라병원, 키바가바가병원 둘다 중한 환자들이 몰리는 곳이기에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자가 많이 죽습니다.

특히 저는 소아과의사로서 주로 미숙아와 소아들을 치료하기에,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상태가 급격히 빨리 나빠집니다.

 1주일 동안에 3명의 신생아가 사망하는 일도 겪을 정도여서  환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나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전부터는 한 명 한 명이 죽을 때 마다 마음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서 얼마 못 버틸것 같은 아이를 보면  “내가 할 수 있는게 더 없는데… 여기서 더 할 수 있는게 없는데.. 이 아이는 곧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순간 절망감이 저를 덮치는 것을 느낍니다. 무언가 할 수 없어서 내 눈앞에서 환자가 죽는걸 보고만 있어야 되는 나 자신의 무기력함에 그리고 곧 겪을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에  힘이 죽 빠지는걸 느낍니다.

 아이의 치유를 놓고 간절히 기도도 해보지만 이런 일을 한번 두번 반복하며 겪으면서 힘들었습니다.  제 환자가 죽은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 혼자 우는 날도 늘었습니다.

몇 주전에는 신생아가 태어났는데 호흡이 안 좋았습니다. 오전 내내 매달려서 겨우 상태가 안정되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출근해보니 밤새 아이가 엄청 안 좋아져있었습니다. 간호사나 의사들이 한국만큼 능동적이지 않으니 밤새 방치되어 있었구요. 순간 화가 났습니다. 제대로 환자를 돌보지 않은 간호사와 의사들에게도 화가나고, 아무리 해봐도 좋아지지 않고 똑같은 황당한 의료시스템도 화가 나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게 더 화가났습니다. 그때 제게 또다시 확 밀어닥치는 절망감을 느끼며 “이제는 이런거 그만 겪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문득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그 아이를 붙들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정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 아이는 좀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이애는 첫애에요. 첫애를 잃는 저 엄마를 봐서라도 좀 살려주세요”

결국 내 손 아래에서 심장이 멈추고 축 처지는 아이를 보고 이제 끝났구나.. 순간 울컥하면서 무언가 제 마음 깊은 곳을 찢어내는 것 같이 먹먹하게 아팠습니다..

 우는 엄마를 겨우 어깨 한번 만져주고 돌아나오면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저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지고 “하나님 정말 왜 자꾸 이러십니까” 라고 속으로 소리쳤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 박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게 왜 이렇게 안 보일까. 기적은 없는걸까? 어차피 죽을 애는 죽고 살 애는 사는 것 같은데 내가 여기에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지? 내가 꼭 여기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

알고보니 그때 남편도 내과병동에서 환자가 죽는 것을 겪으며 저와 똑같이  유난히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희 둘은 무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 힘든 과정이 저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요일 오후에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애들이 한명 죽을때마다 제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그때 제 마음에 울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는 내 마음이 어떤지 아느냐?”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환자가 죽어갈 때 제가 느끼던 그 아프고 괴로운 마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한명을 보면서 느끼시는 마음이셨습니다. 저는 그게 제가 느끼는 저의 감정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마음을 제가 같이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건강해지고 잘 자라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살아가야될 한 생명이 이곳에서 그냥 허무하게 스러져버리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마음이었습니다.

그것 깨닫고 정말 많이 울고 회개했습니다. 저만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힘든 줄 알았지, 이 모든걸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 두신 줄 알았습니다.

이 곳의 아니 전세계의 죽어가는 영혼을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계시는지 저는 감히 몰랐습니다..

제가 참 어리석었습니다. 이제서야 겨우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니 제가 참 어리석습니다.

 

그 일이 있고 한 선배의료선교사님께 저희가 요즘 겪고 있는 심리적인 부담에 대해 나누니 그분이 그냥 한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의업은 우리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 같습니다 .”

저는 이제까지 제게 있는 의술을 달란트라고 생각했지 십자가로 여긴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많이 놀랐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맞더군요..

 의술을 내게 주신  달란트라고 보았기에, 이것을 잘 써야 되고, 좋은 결과를 내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고, 잘 안되면 실망할 때도 많았습니다.  잘 되면 우쭐할 때도 있었구요.

하지만 지금의 저희에게 의술은 십자가입니다. 이것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잘해도 칭찬해줄 사람 없는 이곳에서, 멋지게 실력 발휘할 여건도 안되고, 그럴 능력도 없는 저에게…. 의술은 제게 십자가입니다. 제가 괴로워도 힘들어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그 무게를 감당하며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하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져야 되고, 어려운 환자들을 보며 치료법을 찾으며 무거운 고민을 감당해야 되고, 가망없는 환자를 보며 죽음의 무게도 짊어지고 가야 되는 십자가입니다.

 

이제는 멋지게 훌륭하게 나의 달란트를 사용하여 귀한 열매를 보는데 초점 맞추지 않고,

 나의 십자가를 짋어지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드러내는 증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동역자 여러분들,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동역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희들의 연합과 동역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기를 소망합니다.

늘 평안하시고 성령충만 하시고, 추운 겨울에 건강 유의하시길 빕니다.

 

 

박준범 백지연 드립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1. 나누리 병원 게스트하우스 건립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잘 진행되기를 기도합니다

  2. 두 자녀소현재석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더 깊이 만나게 되고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3. 저희가 늘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